자신의 삶을 이렇게 만든 건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즉 우리는 이런 환경의 노예가 되는것을 자청한 것이다.
아파트의 창을 보면 가능한 한 단순하다. 단순한 것이 나쁠리는 없는데 모든 관심이 방음과 단열같은 경제적인
실리에 맞춰져 있다. 밖과의 단절이 잘 된 것이 좋은 창이라고 생각하며 안과 밖의 소통은 뒷전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열리지 않는
창도 있다는 사실이다! 닫아놓아서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열리지 않도록 설계된 창도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고급 아파트로 상징되는 타워 펠리스는 창이 열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겉으로는 번쩍번쩍하는 호화로움, 그러나
속은 외부와는 철저한 단절이다.
사실 요즘의 삶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일이 펼쳐지건 나만 괜찮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 집을 선택할때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며 바깥 소음 잘 차단 되면 좋고 거기에 집값이 오르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세상은 관심 밖이다. 방안에서 일어나는 내 삶도 자연과 그리고 바깥과 통해야
하는데, 현대인은 창이 없는 벽속에 산다.
우리의 옛 어른들은 이렇게 집을 짓지 않았다. 이런 집에서 사는 현대인의 삶이 건강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미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대형 쇼핑몰을 처음 보았던 순간이 생각난다.
밖에 많은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니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인데 그리 높지는 않고 시멘트 벽으로 둘러싸인
이 건물을 보고 창고 같이 보이는데 왜 사람들이 모이나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쇼핑센터였다. 기계적인 냉방,
난방과 인공적으로 환기를 잘 시키고 자외선을 차단하여 상품을 퇴색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건물은 콘크리트 벽으로 만들면 되다는
서구적 실용주의의 대표적인 산물이리라.
처음에는 참 이상하게 생각되더니 이제는 나도 익숙해졌다. 한국에도 이런 대형 쇼핑몰이 수없이 등장하고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편익을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역시 모든 것이 경제논리를 바탕으로 한 편의주의, 그 속에 내 정서도 이미 침몰해 가는가 보다.
門(문)과 窓(창)은 똑같이 안과 밖이 서로 통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실제로 물리적인 이동이 주로 이루어
지는 곳이門(문) 이라면窓(창)은 몸이 이동하기 보다는 마음이 통하는 곳이다. 그래서 한자(漢字) 窓(창)을
보면 마음 심(心) 자가 딱 받히고 있다. 문은 문설주의 두 기둥 중 한편에 고정되어 열리면 통로가 되지만 닫히면 벽같이 차단할
수 있으나, 창은 좀 다르다.
우리는 '닫힌 마음의 문을 열자' 라는 표현을 자주 듣는데, 폐쇄적으로 살지 말고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삶, 즉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뜻이리라. 마음의 창을 먼저 여는 것은 어떤가?
바쁘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직접 오가며 나누기 전에 먼저 서로에게 미소라도 보내고, 손을 흔들어 정겨운 마음이라도
전하려면 창이 필요하다. 내가 알게 모르게 때때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따스한 햇볕이 들고, 새들의
노래와 자연의 합창이 들려오는, 그리고 이웃의 미소와 눈물을 알 수 있는 나의 창이 열려있는가?
옛 시조에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라는 표현이 있다. 자연은 창을 통해 아침을 알려 주었다.
지금은 두꺼운 커튼을 쳐서 아침을 막아놓고 필요하면 알람시계의 도움을 받으며 가능한 한 자연과의 단절된
나만의 닫힌 공간을 만들며 산다. 이런 답답한 삶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이 근대 시인 중의 한 분도 '남으로 창을 내겠소.' 라고
노래한다. 마음의 창을 내야 한다.
사람은 통해야 건강하게 산다. 자연과 통하고 사람과 통하고 그런데 이 창을 닫아 놓고, 아니 창문이 없는
벽속에 살며 스스로 감옥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창을 만들어 놓고도 열지 않고, 창을 내면서 아예 열리지도
않게 만든다면 이것은 창이 아니라 벽이다.
창은 열고 싶을 때 활짝 열라고 있는 것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밖을 내다보자. 뭉게 구름이 피어오르는
싱가포르 푸른 하늘이 창 가득히 들어온다.
야자 잎을 스치고 온 바람을 깊이 마셔보자. 태평양 인도양을 건너서 나를 찾아온 바람이다. 이웃집 꼬마가
지나가며 손을 흔들어 눈웃음을 보낸다.
그러라고 창이 있는 것이다.
by 정인수 |